자유게시판
심심해서 쓰는 서울 밖 이야기...안동?? 선비 이야기4 마지막.
다시 미스터 선샤인으로 돌아가서....
티비 돌리다 보니까 양반집에 기찻길놓는다고 집 부수고 그런거 나오던데....
거기가 안동 임청각이야.
바로 이 집.
옆에 기찻길 보이지??
이 집은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냈던 이상룡선생의 집이야.
그래서 집 앞에
국무령 이상룡 생가 이렇게 간판을 걸어놨어.
이 분도 러일전쟁 전에 의병활동을 했어. 그런데 러일전쟁 이 후 무력으론 도저히 안될꺼 같으니까 간도로 이주를 해.
거기서 신흥무관학교를 만들고 독립운동 지도자 양성을 해.
이상룡선생의 자식 그리고 손자들도 독립운동을 했어.
여기가 임청각 내부야.
저기 걸린 사진들...집안사람들 중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이야.
훈장부터 독립운동의 흔적이 남아있어.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처럼 우리 독립운동의 신전같은 곳이야.
이 아무것도 없는 빈 방....
여기가 임청각의 사당이야.
양반집 사당에 꼭 있어야되는 신주가 없지??
이게 신주야.
왜 없냐면...
나라가 없으면 집안도 없다고 조상 신주를 집 뒤에 묻어버렸어.
그래서 지금도 신주가 없어.
그렇지만 자신과 아들 손자 모두 나라를 위해 신이 되었어.
이상룡선생은 1932년 만주에서 죽었어.
그리고 77년뒤인 2009년 대한민국 국적이 회복되었어.
요즘 안동에 놀러가는 사람이 많아.
페북이나 유튜브에 '안동 꼭 가봐야 할 곳', '안동가면 꼭 먹어볼 곳' 이런것도 많더라고.
그렇지만 누가 뭐래도 안동은 선비의 고장이야.
도산서원이 있고, 병산서원이 있고, 하회마을이 있고, 학봉고택이 있고, 임청각이 있어서가 아니야.
저 임청각 안에는 9명의 독립유공자가 나왔어.
퇴계집안에는 25명의 독립지사가 나왔어.
퇴계집안 하계파 후손 14대손인 우리가 잘 아는 이육사. 시인으로 유명하지만 그는 총을 잘 다루고 수류탄 제조에 능한 독립운동가였어.
무실마을에는 16명의 독립운동가가 나왔어.
안동과 그 일대 봉화 청송 등등에 독립운동가로 지정된 사람만 7500명 이상이야. 아마 모르는 사람은 더 많을꺼야.
이게 안동이고 안동을 대표하는 선비라고 생각해.
우리가 안동을 갔을 때 학봉고택을 본다면 그냥 옛날 집이야. 그런데 이야기를 알고 간다면 거긴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레주가 있는 곳이야.
임청각은 기찻길 옆 몇칸 없는 고택이야. 그런데 우리 독립운동의 신전같은 곳이야.
혹시 안동을 간다면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껍데기만 보는게 아니라
안동은 선비의 고장이고 우리가 씹선비라 놀렸던 사람들이 사실 범보다 더 무섭고 칼보다 더 시퍼런 사람들이었음을.....
이거 쓰느라 세번 날려먹었어ㅋㅋㅋㅋㅋ
그러면 끝~~~뿅~~~~
하려고 했는데....
ps. 안동은 재밌는게 우리나라에 보기 드문 전탑이 많아.
이렇게 임청각 바로 옆에 큰 전탑이 있어.
또 안동역 앞에도 하나 있고. 또 어디에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보통 일본은 목탑, 우리는 석탑, 중국은 전탑이라고 이야기해. 물론 중국은 워낙 넓어서 오만 탑이 다 있어.
전탑은 흙으로 벽돌을 만들어서 쌓은 탑.
목탑은 아무래도 불에 약해.
전탑은 불에는 강하지만 강도가 약해. 지진이라도 나면 와르르야.
거기다 우리나라엔 좋은 돌이 많이 있으니까 석탑이 중심이 되었어.
전탑은 보통 와르르하면 동네사람들이 다시 쌓았다고 해.
하여간 우리나라에 전탑이 다섯개가 남아있는데 그 중 세개가 안동에 있어.
기차타고 간가면 안동역 앞에도 전탑 있으니까 꼭 구경해보라고~~
그리고 경주 분황사지탑은 모전석탑이야.
이건 벽돌이 아니라 돌을 벽돌모양으로 깎아서 만든거.
그러니까 전탑의 간지는 느끼고 싶은데 벽돌로 만들면 내구도가 약하니까 저렇게 만들었는데....
문제는 일이 너무 많은거지. 벽돌은 구우면 뚝딱인데 이건 뭐 하나씩 깎아야되니까...
그래서 저런 정신나간 규모는 분황사 뿐이고 전국에서도 몇 개 없어.
중국에는....있을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나도 몰라.
ps2. 학봉 김성일이랑 서애 류성룡이랑은 집안끼리 머리터지게 싸웠어.
둘 다 퇴계의 제자야.
1620년 퇴계를 모시는 여강서원(사액되면서 호계서원)이 건립되었어.
중간엔 퇴계위패를 모시고....왼쪽에 누구를 놓냐란 문제로 싸움이 붙어. 왼쪽이 높은건데 왼쪽에 학봉이 가냐 서애가 가냐로 머리터지게 싸우는거야.
이걸 병호시비라고 해.
풍산 류씨의 병산서원과 의성 김씨 호계서원의 앞자를 따서.
관직은 정1품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이 종2품 경상도 관찰사였던 김성일보다 높았는데 나이는 김성일이 네살 많았어.
거기다 영남 유림들은 학봉을 더 존경했거든.
나라에서 지시하기를 서애를 왼쪽 학봉을 오른쪽 콜?? 이랬는데 못하겠다고 나온거야.
조선말기 흥선대원군까지 나서서 정리하려고 했는데 해결 못했고...그래서 대원군 스타일로 호계서원을 철폐시켰어ㅋ
결국 이게 어떻게 되었냐면....
400년이 지난 2008년에 호계서원을 복원하면서 왼쪽에 서애를 놓고 오른쪽에 학봉을 놓는 대신 학봉 옆에 그의 제자 소퇴계라 불린 이상정도 함께 놓는걸로 결론이 났어.
전국에 유일하게 위패가 네개있는 서원이 되었어.
이게 제자들의 자존심대결, 서로 혼인관계로 엮인 영남 남인들의 자존심 대결 등등 오만게 다 엮이니까 이 사단이 났던거야.
그러면 진짜 끝.
혹시 궁금한거나 나도 생각난거 있으면 댓글로~~
65000자 넘으면 한번에 못 올린다는데...
중간에 잘라도 저거 떠서 네번에 나눴어.
읽기 귀찮게해서 ㅈㅅ.....
근데 아무리 봐도 65000자 아닌거 같은데....이거 다 김유식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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