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프랩관리자
자유게시판

심심해서 쓰는 서울이야기. 장충단공원과 박문사.

Ssarx· 2026.02.25 17:14· 조회 3465
안녕 얘들아.... 이제 봄이야. 좀 있으면 꽃샘추위 한번 올꺼고 완전 봄이 되겠네. 그리고 몇 일 지나면 3.1절이야. 3.1절이 혁명이라는 사람도 있고 설민석은 민족대표 33인은 룸싸롱에서 술 한잔 걸쳤다고 표현하기도 했고. 어쨌든 어마어마한 사건인건 확실하지만 조선의 운명을 변화시키기엔 역부족이었어. 하여간 오늘 소개할 부분은 장충단 공원과 박문사야. 동그라미 칠 필요도 없이 장충단공원은 동국대 앞에 있는 공원이야. 그리고 박문사는 어딨는지 안보이지?? 또 길 건너편에 신라호텔있고. 일단 머릿속에 장충단공원이랑 신라호텔 위치만 기억해놓고 있자구. 1882년 임오년에 임오군란이 일어났어. 대충 아다시피 구식군인에게 13개월만에 봉급을 지불했고 심지어 그거도 먹지도 못하는 쌀이었어. 열받은 군인들이 대원군을 끼고 창덕궁을 쳐들어갔고 민비는 장호원으로 ㅌㅌ했어. 여기서 적당히 사과하고 뭐 그렇게 수습할 수 있는걸.... 고종인지 민비인지 몰라도 저 빡대가리가 청나라군대를 불러서 수습하려고 했어. 청나라부대도 들어오고 이걸 보고 일본도 조선에 배상책임을 요구하면서 제물포조약을 맺어. 조약의 핵심 중 하나는 일본군대의 조선주둔이야. 이때부터 나라는 망했던거야. 뒤에 있는 사건들은 그냥 망할만하니까 망했던거고. 하여간 나라가 이 모양 이꼴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1900년에 고종이 장충단을 만들라고 지시를 해. 장충단은 임오군란때 죽은 병사들을 기리기 위한 사당이야. 대충 위치는 위에 장충단 공원 내 사회과학관 밑에 누런색 자리 저 쯤 된다고 하네. 지금 장충단 공원에 가면....동대입구역 4번출구로 나와서 오른쪽으로 보면 바로 보여. 장충단에 가면 먼저 이런 장충단비가 있어. 오늘 해설사에게 물어보니까 원래 이 자리는 아니라고 하더라구. 아마 공원 만들려고 하다가 어디서 주워와서 세워놓은게 아닐까 싶어. 저기 써 있는 장충단이란 글씨는 순종이 황태자 시절에 쓴 글씨야. 뒤에는 민영환이 여기는 임금님이 시켜서 임오군란때 죽은 사람 기리는 사당이다 그런게 써 있어. 민영환은 을사조약때 자결한 사람. 그리고 장충단 비석 뒤에는 '제일강산태평세계비'라고 쓰여진 비석이 있어. 배성관 이라고 일제때 인사동에서 골동품 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쉽게 말해 우리나라 유물을 일본에 빼돌리는 일을 했어. 그러다가 해방되고 625때 아들이 다 죽으면서 갑자기 뭔 바람이 불었는지 자기가 수집했던 골동품을 박물관이나 절에 기증을 했어. 그 양반이 60년대 말에 세운 비석이야. 왜 저기에 세워져 있는지 이유도 알 수 없고 뭐 그런데 그냥 옛날부터 세워져 있었으니까 지금도 있는 중이야. 그리고 저 비석 뒤에 이렇게 석등이 두개가 있어. 장명등이라고 하는데 보통 묘 앞이나 절 앞이나 그런데 있는 석등을 말해. 장명등이나 석등이나 그냥 그렇게 부르면 되는데..... 저 등 모양을 봐바. 이 등은 태종 이방원이랑 원경왕후의 무덤인 헌릉의 석등이야. 석등 모양이 좀 다르지?? 물론 석등은 모양이 다 다른데 장충단 석등은 왜색이 짙어. 보통 우리나라 석등은 오얏꽃이 피기 직전의 모습이라 이야기하고 일본 석등은 벚꽃이 활짝 핀 모습이라 이야기 해. 어쨋든.... 고종때 장충단을 만들었고, 장충단은 일종에 현충원 같은거였는데...................... 1900년에 만들어진 장충단은 봄가을로 제사를 올리다가 1910년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고 폐사했어 이 때 장충단 비도 뽑혔다고 해. 그리고 어디 버려놨겠지 뭐. 그리고 1919년 장충단에는 공원이 조성되. 정확하겐 알 수 없지만 장충단은 지금 공원이랑 신라호텔을 포함하고 있었던건 확실해. 이런식으로 만들었고 뭐 그렇게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어. 일제시대를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모일 만한 장소...즉 공간이 넓은 곳은 지금 탑골공원이랑 장충단공원 정도일꺼야. 잠시 시간을 돌려서. 1909년 이토 히로부미 이등박문이 안중근 의사에게 사살되었어. 이토 히로부미는 초대 조선통감이었어. 조선총독. 이 양반이 이등박문. 이토 히로부미야. 1932년이 되었어. 1931년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켜. 쉽게 말하면 중국을 먹기 위해서 만주로 쳐 들어가는거야. 이 전쟁의 병참기지는 한반도였어. 그리고 이 시기는 일본이 가장 잘 나갔던 시기였고, 또 일본이 미쳐 돌아가던 시기였어. 한 몇년 중국털고 동남아 털면서 잘 나가니까 미국이 견제하기 시작했거든. 자기들 식민지인 필리핀을 보호할 겸. 그런데 워낙 잘나가던 시기라 미국이랑 전쟁을 붙기로 한거야. 맛깔나게 싸대기 한대 날리면 미국이 놀라서 화친하자고 할꺼라고. 그래서 진주만을 때렸고........ 하여간 32년 일본이 무지막지하게 잘 나가니까 초대총독을 추모하기로 해. 장충단공원에 가면 장충단 안내소??같은거 있는데 거기서 찍은건데... 32년인가 33년인가 지도라네. A가 지금 신라호텔이야. B가 장충단이고. 중간에 길같은게 남산터널가는 길. A밑에 텅 빈 곳이 장충체육관자리. 저 당시엔 공터였고 일본군인들 훈련하는 곳이었어. B에서 조금 내려가면 산 중간에 뻐끔하게 뚫려있는 곳 보이지??? 지금 동국대 자리. 20년대에 저기에 조계사라는 절을 세워. 종로에 있는 조계사랑은 다른 절이야. 하여간 이 절을 세우고 조선 불교를 이 절에서 관리하도록 했는데..... 절에 가면 대웅전이 있자나. 가장 중심되는 건물이니까 본당이라고 하는데... 이 본당을 경희궁 숭정전을 뜯어다가 만들어ㅋ 이게 뜯기기 전에 숭정전이야. 하여간 이걸 뜯어다가 절 본당으로 썼어. 지금 저 사진에 보이는 것 처럼 잡초 무성하고 관리도 안되어 있어. 이게 일제시대 조선궁궐이야. 이 건물은 이 후 해방이 되면서 동국대에서 거뒀고... 지금은 동국대에서 절로 쓰고 있어. 서울역사박물관 뒤에 경희궁 복원터에는 그냥 새로 만들었고. 다시 돌아가서... 일제는 지도 A위치에 박문사라는 절을 만들어. 이토 히로부미가 이등박문이자나. 그래서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절. 박문사를 만들었어. 지금 신라호텔 영빈관 자리에 이런 건물을 지었어. 사진 오른쪽에 박문사 본당이고 왼쪽에 기왓집 하나 보이지?? 원래 경희궁 정문인 흥화문이었어. 그런데 박문사 만든다고 저 문을 뜯어다 입구에 세운거야. 위에 지도를 보면 일렬로 쫙 뻗어있자나. 그 입구야. 그 외에도 박문사라는 절에 다른 건물이 있을꺼자나. 경복궁에 있던 선원전이란 건물을 뜯어와서 박문사 부속건물로 만들었어. 선원전은 왕의 어진을 모시는 건물. 하여간 망한 나라의 왕궁은 이렇게 비참하게 쓰여졌어. 32년 10월 박문사가 완성되었을 때 전국팔도 친일파부터 다 모였어.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이랑 전쟁분위기가 살살 고조되던 시기야. 만주사변 이 후 일제는 중국이랑 싸우고 있는 중. 전쟁분위기가 고조되면 으쌰으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겠지?? 육탄삼용사야. 중국군 철조망에 수류탄던져서 철거하려다 터졌는데 이걸 무용담으로 만들어서 으쌰으쌰했어. 그리고 37년 장충단공원에 육탄삼용사의 동상이 들어서. 조선의 현충원인 곳이었어. 그리고 가장 치욕적인건 39년이야. 앉아있는 사람 중 왼쪽은 안준생. 오른쪽은 이토 분키치야. 안준생은 안중근의사의 차남. 이토 분키치는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 안준생이 박문사에서 이토 분키치에게 우리 아버지가 어리석어서 당신 아버지를 죽였다고 사과했어. 그래서 친일파로 제대로 낙인찍히고 김구는 안준생을 사형시키라고 하고 암살할꺼라고 했는데 어쨌든 살아남았고 51년도에 죽었어. 애비 얼굴에 먹칠한 놈이라고 평생 욕만 먹었지만 한편으로 참 딱한 사람이야. 안중근의사에겐 아들 둘 딸 하나가 있었어. 큰형인 안문생은 어릴적 밀정이 준 과자를 먹고 독살당해. 누나인 현생은 프랑스 신부가 거둬줘서 수녀원에 살다가 러시아로 망명을 가. 해방되고 한국으로 들어왔고 이 후 대구에서 교수를 하다가 사망해. 막내아들은 준생은 먹고 살 방법이 없었어. 독립운동가의 자식을 거둬주거나 경제적으로 지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던거야. 어쨌든 그의 행위는 용서받기 힘들지만 인간적으로 동정이 가는 인물 중 하나야. 우리가 동아일보를 만든 인촌 김성수를 친일파라고 하자나. 그런데 인촌이 저런 사람들을 도와줬어. 친일행각도 있었지만 뒤로는 독립운동가의 자식들을 교육시키고 보살펴줬어. 당장 보성전문학교, 지금의 고려대가 한글교육에 일선에 있었던 학교야.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더욱 비참했어. 그리고 백산 안희제나 경주 최부자, 인촌 김성수같은 사람이 도와줘서 그나마 밥이라도 먹은건데 안준생은 그런 기회조차 가지지 못했던거야. 그리고 인촌을 친일파라고 몰아버리는게 참 무리수라는거고. 친일인명사전이야. 사전이니까 기계적으로 분리한다고 해도 훈장박탈같은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하여간 지금 신라호텔 자리에 박문사가 들어섰어. 그리고 지금도 신라호텔에 가면 정문이 흥화문 모양으로 되어있어. 현판엔 영빈관이라고 적혀있어. 해방 이 후 이야기는 뒤에 할께. 그리고 이 문을 통과하면 이런 계단이 있어. 박문사 올라갔던 계단이야. 이런 계단은 서울에 많이 남아있어. 남산 케이블카 타는데 있는 삼순이계단. 드라마에 나왔던 그 계단은 경성신사 올라가는 계단이였어. 그리고 해방촌에 108계단. 경성 호국신사 올라가는 계단이야. 사진초과라 이제 사진은 못올리는데.... 저 계단을 올라가기 직전에 보면 석등이 하나가 있어. 장충단공원 석등이랑 비슷하게 생겼어. 그래서 장충단공원 석등이 박문사에서 쓰던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 모양도 그렇고, 딱히 저기에 있어야 될 이유가 없으니까. 하여간 이래저래있다가 해방이 되었어. 동국대자리 조계사네, 박문사네 해방되고 다 때려부셨어. 그리고 그 자리는 그냥 공터로 남아있었어. 그러면서 57년도에 유지광이 일으킨 장충단집회 방해사건 등등 야인시대에 나올만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고. 이 후 50년대 말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수표교도 옮겼고 신라호텔에 있던 장충단비도 옮기고 뭐 그렇게 있다가 공원화되면서 지금에 이르렀어. 옛 박문사터는 삼성에서 인수해서 신라호텔을 만들었고. 그리고 정문인 흥화문은 경희궁을 복원하면서 원 위치인 서울역사박물관 옆에 있어. 아까 말했던 조계사 건물로 쓰던 숭정전은 워낙에 변형이 심해서 그냥 동국대 안에 넣어놓고 정각원이란 절로 쓰고 있어. 박문사 부속건물이던 선원전은 그냥 사라졌어. 장충단공원은 지금은 노인들이 햇빛쬐는 그냥 동네 공원이야. 그런데 그 땅은 우리에게 복잡한 감정의 땅이야. 뭐라고 결론을 지어야할지 모르겠네ㅋㅋㅋㅋ 동국대 앞에서 버스타고 남산 올라갈 일 있으면 버스타기 전에 한번 둘러보면서 잘난 척을 하면 될꺼야. 그러면 뿅. ps. 첫번째 사진 네이버 지도에 서울클럽이라고 있거든. 자유센터였나?? 뭐 옛날 반공회관 안에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사람들이 모이는 클럽이야. 버닝썬같은 클럽이 아니라 진짜 모임. 외국 영화에 나오는 그런거. 고종때였나?? 뭐 대충 그때쯤 만들어졌어. 당시 외교관들 모임을 고종이 주선했다던가?? 그랬던걸로 기억해. 가입비 8000만원정도에 월회비 따로 내야되고 가입하려면 기존 회원 2명의 추천을 받아야되고. 또 총원이 정해져있어서 누가 탈퇴하거나 죽어야 들어갈 수 있는데....이거도 심사하는거라 떨어지는 사람도 많다네ㅋㅋㅋ 조금전에 정관 한번 보니까 고급외교관들은 그냥 가입 가능하데. 이거의 시초가 한양랏지. 즉 한국 프리메이슨 모임이야ㅋ 위에 말한 고종이 만든 모임이 어찌어찌해서 한양랏지가 된건지는 모르겠지만ㅋ 그래서 저 안에 진짜 랏지가 있고, 심지어 페이스북도 있어ㅋㅋㅋㅋ 사진보니까 그냥 서양할배던데....그 할배가 프리메이슨이더라구ㅋ 여기 말고도 이승만때 낙랑클럽같은 별별 사교클럽이 있었어. 다음에 시간나면 이런 사교클럽 한번 써볼께ㅋ 온갖 야사투성이인 역사야ㅋ ps2.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가 김수근이야. 공간사옥 만든 사람. 이 사람이 설계한 건물이 서울클럽이 있는 자유총연맹. 옛 이름 반공회관. 그리고 장충단공원에서 동대문쪽으로 가다보면 나오는 경동교회가 있어. 반공회관은 딱히 볼꺼 없는데 경동교회는 꼭 가봐. 건물에 창문하나 없이 벽돌깨서 만들었는데 좀 특이해. 특히 교회의 모양이 기도하는 손을 형상화했어. 남영동에 가면 남영분실이라고 박종철군 고문하다 죽은 곳이 있는데 이것도 이 양반이 만들었어. 고문에 최적화된 건물이야. 그래서 독제정권에 타협한 사람이라 욕 많이 먹어. 그런데 이 양반의 제자가 승효상인데 지금 정권에서 최정점을 찍는 사람이거든. 자기 스승이라 변호는 하는데....아이러니하지. 유명한 건물은 지금 반야트리인 타워호텔이랑 공간사옥. ps3. 경동교회찍고 큰 사거리에서 우회전해서 쭉 가다보면 광희문이 나와. 사대문이 있듯이 사소문이 있는데 이 중 남소문이 광희문이야. 옛날엔 시체가 나갔던 문이라고 시구문이라고 불렀어. 그리고 그 문에서 길 건너편에 지금은 아리움본사,옛날엔 서 산부인과 건물이 있어. 남성의 성기와 자궁속에 있는 태아를 형상화했다고 하는데...난 잘 모르겠더라ㅋ 동글동글한게 특이하긴 해. 이 건물을 설계한 사람은 김중업. 르 꼬르뷔지에라고 전설적인 프랑스 건축가의 제자야. 위에 김수근이랑은 다르게 당시 서울난개발. 와우아파트 등등을 비판했다가 쫒겨나서 프랑스에 있다가 미국에 살다가 박정희 사 후에 귀국했어.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청계천 옆에 있는 31빌딩. 이렇게 쓰면 김수근은 아주 나쁜놈같지만....그래도 대단한 건축가야. 장충동갔다가 딱히 할 꺼 없는 사람이면 광희문까지 찍으면 두어시간걸릴꺼야. 그리고 신당동에서 떡볶기에 소주한잔하면 깔ㅡ끔 ps3. 3줄요약. 장충단공원은 현충원이었음. 일제때 이등박문추모하던 박문사됨. 지금은 신라호텔됨.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스팸 때문에 댓글을 잠시 닫아두었어요.

운영자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