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심심해서 쓰는 서울 이야기. 서소문등등
안녕 얘들아.
오랫만에 글 쓰네...
뭐 이래저래 하다보니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 하나 쓰려고...
오늘 쓸 곳은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이야.
어딘지 모르겠지??
대충 이야기하면 서울역 뒤에 있는 작은 공원이야.
그리고 여기는
이런 멋진 배경으로 인스타 사진쟁이들의 성지가 되었어.
원래 그냥 동네 공원이었어.
그런데 2014년 프란체스코 교황이 여기를 들려서 기도를 드리면서 어마어마하게 유명해졌고
서울시에서 성지역사박물관을 만들기로 결정했어.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
여기에 성지박물관을 만드는 것에
천도교, 유교, 불교 등 다른 종교가 반대를 하고 나선거야.
뭐 그래도 그냥 만들어졌고 천주교의 성지가 되었어.
교황청에서 인정한 성지가 된 것으로 알고 있어.
이 땅이 조선시대에는 사형장이었어.
서경이라는 책에 보면 '형장은 사직단에 우측에 있어야 된다.'라고 적혀있어.
사직단이 대충 광화문에서 독립문넘어가는 사직터널 옆에 있으니까 얼추 방향은 정확해.
하여간
조선시대부터 사형장이니까 어마어마하게 죽었겠지.
대충 서소문 밖이니까 성 안에서 재수없는 사형같은건 안하는거고 그리고 사직단 우측이니까 방향도 얼추 비슷하고
사람들 왕래가 많은 지역이니까 경각심도 일으키기 좋고.
이래저래 사형하기 좋은 위치였어.
그리고 천주교의 성지가 된 이유는 조선말기 여기서 사형당한 사람의 숫자가 확인된 것만 100명이 넘기 때문이야.
그러면 다른 종교에선 왜 반대를 할까??
조선시절 사형을 시키는건 왕이 직접 국문을 하고 너 사형 이렇게 해야 사형을 할 수 있었어.
물론 조선말기엔 그딴거 없이 멍석말이해서 두들겨패고 그냥 죽으면 물에 던져버리는 것으로 끝냈지만.
천주교는 19세기 이 후에 조선땅에 들어온 종교야. 물론 임진왜란때 들어왔네 어쩌네 하겠지만 실질적으로 신도가 생긴건 19세기 후반이야.
그러면 그 전에도 저 사형장에서 여러명이 죽었을꺼고 그런데 저기를 천주교 혼자서 우리성지 꽝꽝 이러면 다른 종교가 열받겠지??
그 중 가장 열받을 종교는 천도교라 생각해.
천도교는 뭐 동학이랑 비슷한거야.
동학 족보에서 나와서 이름바꾸고 뭐 어쩌고 저쩌고 한건데....
우리가 보통 동학이라고 하면 못살겠다 갈아보자!! 이러면서
농민혁명을 일으켰고 전주까지 함락시켰다가 마지막에 우금치에서 일본군에게 진압당하면서 끝난걸로 알고 있자나.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전봉준 장군의 모습도 있고.
전봉준장군은 마지막에 의금부로 압송되어서 국문을 받고 교수형을 당했어.
아마 서소문성지에서 사형을 당하지 않았을까 추론할 수 있어.
그 외에도 수 많은 유생들과 동학농민 등등 천주교인 이 외에도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사형을 당한 땅이니....천주교 성지 이렇게 말했을 때 삐치는건 뭐...
오늘 이야기의 중심은 사실 다른 이야기야.
동학농민운동이 처음 일어났을때 그들을 뭐라고 불렀는지 알아??
동비라고 불렀어.
동학할 때 동 도적떼란 뜻의 비.
예전에 안동 쓸 때 쓴 적 있는데 의병을 비도라고 불렀어.
그냥 도둑놈이란 뜻이야.
하여간 동학농민들이 전주를 접수했을때 조선왕실은 난리가 났어.
왜냐면 조선왕실은 '전주'이씨거든.
경기전도 전주에 있고.
경기전은 어진, 즉 왕의 초상화를 모신 곳이야.
그만큼 전주는 중요한 곳이었어.
초상화는 사실상 왕이랑 같은 존재거든.
하여간 감히 전주를 접수한 저 역적놈들을 찢어죽여야 하는데 당시 조선군대는 서류상의 군대였어.
가만히 생각해보면 총 한방 못쏴보고 없어진 나라야. 제대로 된 군대가 없었어.
그런데 왕실에겐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어!!
국가의 녹을 먹는자, 아니면 녹을 먹어본 자.
바로 양반이야.
양반들은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혹은 폭도를 진압하기 위해 의병을 일으켰어.
향 후 이들은 일제와 맞서 싸웠고 엄청나게 죽어갔어.
그리고 초창기 이들의 적은 동학농민이었어.
이들 중 하나가 안중근의사와 그의 아버지 안태훈이야.
안중근은 당시 초 엘리트야.
양반가에서 태어나서 광산사업으로 부를 쌓은 집안에서 어릴적부터 사격을 했고 승마를 배웠던 사람이야.
그에게 동학농민은 일개 폭도일 뿐이었고 또 죽창이나 들고 싸우는 잡병일 뿐이었어.
하여간.
전주를 접수한 동학군은 왕실과 전주화약을 맺어.
그리고 집강소라는 자치기구를 설치했고 조정과 상관없는 통치행위를 했어.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히어로.
고종이 기가막힌 선택을 하지.
전주가 털린걸 못참고....그리고 자국의 군대는 없으니까 청나라에 헬프를 떄려.
청나라 입장에선 요즘 조선놈들 삐딱선타는데 한번 혼을 내 줄 기회야.
군대를 파견해.
텐진조약이란게 있어.
청나라가 군대를 파견하면 일본도 군대를 파견한다.
고종도 텐진조약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의 히어로 고종은 그딴 하찮은거 신경도 안써. 그냥 전주땅 털린게 억울했거든.
일본도 한반도 먹고싶어 죽겠는데 좋은 기회야.
둘이 조선땅에서 한판 붙었어.
청일전쟁이야.
그리고 일본이 이겼어.
전봉준은 일본의 손아귀에서 왕을 구출하자!! 이러면서 봉기를 일으켜.
2차 봉기야.
그리고 우금치에서 전멸을 해.
지금 공주에 가면 이렇게 기념비가 있어.
그런데!!
사실 동학군을 진압한 군대는 일본군이 아니야.
관군이야.
그리고 동학군에게 갈겼던 기관총은 고종이 해외직구로 들여온거야.
조정의 눈으로는 왕을 구하고 나발이고 저들은 전주를 먹은 폭도들이거든.
병사를 일으킨 이유따윈 중요하지 않아. 그냥 거지놈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 뿐이야.
이 때 교주인 최시형, 전봉준, 김개남 등등 지도자들은 모두 잡혔고 처형당했어.
김개남은 이 전투에 참가하지도 않았는데 밀고당했어.
누가 밀고했냐면...항일 의병장인 임병찬이야. 그 유명한 최익현의 수제자.
이 복잡한 이야기를 한 이유가 뭐냐면....
대한제국 시기 양반계층도 우국충정을 위해 항일의병을 일으켰어.
그런데 그들은 동학농민을 학살했어.
기록에 보면 황해도 어디에선 동학농민 300여명을 강에 밀어넣어서 죽였다고 해.
그런 일이 수도 없이 일어났어.
자.....
이제 동학농민에게 대한제국이나 일본제국이나 다 같은 나를 죽이는 놈들이야.
여기서 한 놈을 선택해야해.
동학농민 입장에선 대한제국 놈 보단 일제가 낫다고 생각해.
왜냐면 일본은 메이지유신하면서 종교의 자유, 신분제 철폐 등등이 형식적으로나마 일어났거든.
농사짓는 사람들이 일본 내부가 어떤지 어떻게 알겠어.
그런데 조선 양반들 하는 꼴은 아주 잘 알고 있었거든.
수백년동안 아주 혹독하게 당했으니까.
또 일본은 이렇게 설득했어.
자자자.....우리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우리에게 힘을 실어다오!
이 시기 종교의 자유가 없어서 학살당한 사람들이 또 있었어.
처음에 말했던 천주교인이야.
이 둘은 일본에 붙어.
그리고 드디어 오늘 이야기의 핵심인 단어가 나타나.
바로 '토왜'야.
이 말이 처음 나온 곳은
이태현의 정암사고에서 처음 나와.
이태현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장렬히 자결한 분이야.
그의 눈에는 동학농민이랑 천주교인은 일본에 붙어먹는 토착왜구였어.
을사조약 이 후 선비를 중심으로 의병이 일어났어.
그리고 일제가 이들을 진압할 때 동학농민운동 출신자와 천주교인이 일본군과 힘을 합쳐서 저들을 진압했어.
지게로 총알을 나르고 식량을 날랐어.
대충 이 무렵 동학은 천도교로 이름을 바꿨고 중앙당에서는 단발을 하고 하얀 옷 대신 검은 옷도 좀 입고
소위 개화를 하자고 했어.
그리고 선비....우리가 의병이라 부르는....들은 이들을 토착왜구라고 했어.
그리고 그 토착왜구들은 선비 의병을 진압하는데 앞장섰고.
어느날 부터 우리는 토착왜구란 말을 쓰기 시작했어.
그런데 토착왜구였던 동학농민과 천주교인은 살기 위해서 싸웠어.
국가라는게 천도교인이라고, 천주교인이라고 저렇게 사람을 죽이는데 어쩌겠어....살 방법을 궁리해야지.
나라고 나발이고 내 목숨이 붙어있어야 이야기가 되는거니까.
동학난, 동학폭도라는 표현에서 동학농민운동이라고 이름을 바꾼 사람이 누군지 알아??
박정희야.
박정희가 동학농민운동이란 표현을 공식화했고 기념탑을 세웠고 위령탑을 세웠어.
좌우로 가르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이해가 안되지만.....
그러나 박정희의 아버지는 동학 접주에 머슴출신이야.
아........또 전봉준 장군을 기리는 사업을 크게 한 분이 계시는데....
이 분이야.
왜냐면 같은 전씨거든......역시 범인은 이해할 수 없는 분이야.....
하여간
우리는 토착왜구라는 표현을 쉽게 쓰고 있어.
그런데 그 토착왜구는 사실 처음에는 외세와 싸웠고 이 후에는 자기가 살기 위해서 싸웠던 동학농민과 천주교인이야.
너무 쉽게 쓰는 단어지만 그 안에는 살기 위해서 싸웠던 사람들의 억울함이 묻어있어.
그래도 같은 민족끼리 도와야되는거 아니냐. 그러니 동학농민들, 천주교인들 개새끼라고 말 할 수도 있는데....
농민입장에선 수백년동안 뜯어먹던 양반한테 계속 뜯기다가 죽을래 아니면 일본이라는 새로운 세력에 승부를 걸어볼래 라는 기로였던거야.
뭐라고 끝내야하지??
난 안중근의사도 존경해. 그렇지만 그가 진압했던 동학농민의 피눈물도 기억하고 있어.
어쩌면 좌우라는 단순한 논리로 역사를 단순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해.
의병이란 테두리 안에는 신분으로, 종교로, 신념으로 등등 전혀 섞일 수 없는 분류가 있어.
그리고 그들을 한 곳에 모아서 어중간하게 이야기하는 것 보다 모두를 존경했으면 좋겠어.
일제에 항거했던 선비출신 의병들도 존경받아야하고 그들과 대적했던 토착왜구였던 동학농민, 천주교인의 피눈물도 기억했으면 좋겠어.
하여간 처음에 이야기한 서소문 박물관은 천주교의 성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동학농민도 어마어마하게 죽은 곳이야.
그리고 저 동네 근처에
호수집이라고 닭도리탕집이 있는데
닭꼬치가 맛있어.
닭도리탕은 뭐 여기나 저기나 내 입엔 비슷하더라.
오늘은 뭔가 중구난방인거 같지만....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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