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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서 쓰는 서울이야기. 북촌 한옥마을.

ㅇㅇㅁㅇ· 2026.03.02 06:27· 조회 5883
이제 살살 걸어다니기 진짜 좋은 계절이야. 그러면 당연히 북촌 한옥마을도 미어 터지겠지?? 여기에 갔다 온 사람도 있을꺼고 아직 안간 사람도 있을껀데 하여간 오늘은 북촌 한옥마을에 대해 쓰려고 해. 북촌에 가면 북촌전망대가 있어. 거기에 1890년인가 80년인가에 경복궁, 북촌 등등의 전경을 찍은 사진이 있어. 인터넷에 굴러다닐줄 알았는데 못찾겠네. 하여간 그 사진을 보면 북촌은.........없어. 그냥 하얀 바위만 있어. 이 후 1910년 한양지도에도 북촌엔 가옥이 거의 없어. 그런데 1930년 경성지도엔 북촌에 동네가 나타나. 즉 우리가 보는 북촌이란 1910년에서 30년 사이에 만들어진 곳이야. 이거 다 지도를 보여주고 싶은데 찾으려니 못찾겠다.ㅋ 도대체 저 시기에 왜 북촌이 만들어졌을까?? 먼저 이 그림을 보자고. 대충 그려진 종로일대 지도야. 청계천 경복궁, 창덕궁 등등 어딘지 알겠지?? 왼쪽 위가 경복궁, 오른쪽 위가 창덕궁, 창경궁, 그 아래쪽이 종묘야. 그리고 파란건 청계천. 대한제국이 개방이 되면서 경성땅엔 전세계 사람이 몰려오기 시작해. 지금 시청광장 앞 프라자호텔 뒷쪽엔 중국인 조차지였어. 중국대사관이 명동에 있는 이유야. 그리고 청계천 남쪽. 지금의 명동, 충무로는 일본인 거주지였어. 그 외에도 정동엔 미국공사관과 러시아공사관, 프랑스공사관 등등이 있었어. 프랑스공사관은 을사조약 이 후로 지금의 충정로로 자리를 옮겨. 프랑스공사관은 지금의 프랑스대사관이 있는 곳이야. 그리고 그 자리는 우리가 많이 들어봤던 민영환의 집터야. 하여간 저 그림에 청계천을 중심으로 남쪽엔 일본인이 살았고 북쪽엔 조선인이 살고 있었어. 그러다가 1910년 한일합방이 되고 조선땅에 총독부가 들어서. 처음엔 잠시동안 용산 통감부에서 업무를 보다가 남산에 이렇게 떡하니 건물을 지었어. 지금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자리야. 이 후 이 땅은 박물관도 되었다가 방송국도 되었다가 통일부도 되었다가 안기부, 소위 남산이라는 곳이 되. 남산은 신궁부터 시작해서 크고작은 신사, 행정건물 등등 일제의 본거지가 되었어. 그리고 남산일대 즉 지금의 명동이나 충무로는 일본인동네가 되었던 거야. 그런데 당시 총독부만 직원이 1500여명되는 거대 기관이야. 저 건물도 업무를 보기엔 규모가 작고 특히나 주변에 직원들이 살 집을 지을 땅이 부족해. 처음에 이야기했지만 서울, 당시 경성은 청계천을 주변으로 남쪽은 일본인이, 북쪽은 한국인이 살았다고 했지?? 그리고 예전에 백송에 대해서 썼을때 당대 친일파들은 지금의 북촌과 서촌 일대에 큰 땅을 하사받았다고 썼는데...기억 하려나??ㅋ 일제는 새로운 총독부를 지을 땅을 찾기 시작해. 지금의 서울시청도 후보지였고. 그러다가 경복궁, 광화문 뒤에 총독부를 건설해. 이렇게. 드디어 일본인들이 청계천을 넘어왔어. 이제 여기에 근무하는 직원들이나 뭐 이런저런 일본인들이 살 집을 구해야해. 당시 경성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어. 일본에서도 어마어마하게 넘어오면서 경성은 집값이나 땅값이 폭등을 해. 그 전까지 집은 경제적인 가치가 있는게 아니었어. 그냥 대대손손 물려주면서 사는거였지. 그런데 인구가 폭발하자 집도 경제적 가치를 지니게 되었어. 그래서 개발된 곳이 서촌이야. 지금의 청운동, 효자동, 사직동. 지금도 서촌에 가면 적산가옥들이 보여. 뭐 이런식으로 곳곳에 남아있어. 당시 서촌은 사람이 사는 곳이었어. 서촌에 있던 초가집이네 뭐네를 일제는 강제로 사들렸어. 물론 똥값에. 그리고 거기를 재개발한 다음 고가에 분양을 한거야. 이 건축업자는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겠지?? 서촌이 이렇게 되는동안 북촌은 어땠을까?? 당시 북촌엔 땅을 하사받은 친일파들 몇명이 저택을 지어놓고 살았어. 지금 정독도서관 뒤에 가면 '백인제가옥'이 있어. 규모도 어마어마하고 집도 엄청나게 잘 지었어. 압록강 소나무를 가져와서 지었다고 해. 그러면 이 집을 지은 사람은 누구일까?? 한상룡이란 사람이야. 조선귀족이야. 조선귀족이란....일제때 조선인 중 일본에 잘 협조한 사람들에게 작위를 줬거든. 그 사람들을 조선귀족이라 불러. 이 사람은 조선의 거부 중 한명이었어. 한성은행을 만들때 참여했고 동양척식회사를 만들때 참여하면서 부를 쌓았어. 일제가 창씨개명을 생각하기도 전에 창씨개명을 해야한다고 건의한 사람이야. 덤으로 이완용의 외사촌. 하여간 이 집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팔리다가 백인제선생이 마지막 주인이 되었어. 지금은 서울시가 소유하면서 민간에게 개방하고 있어. 백인제선생은 '내가 고자라니'에 나오는 의사양반이야. 당대 친일파들, 혹은 최상류층 사람이 살았던 집을 보여주는 곳이 두군데 있어. 정독도서관 올라가는 길에 윤보선가옥, 그리고 백인제가옥. 윤보선가옥은 개방을 안하니까 못보고 이 집을 보면 그 생활상을 알 수 있어. 어쨌든 이 집 주인이 바뀌는 걸 봐도 그 시대에 뭔가 일이 있었던거 같지?? 북촌쪽에 어마어마한 땅을 하사받은 친일파들이 막상 일제시대가 되자 몰락하기 시작해. 혹은 집이고 땅이고 다 팔아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가기도 했고. 다시 돌아가서.... 경성에 인구는 폭발했어. 서촌은 개발이 끝났어. 이제 남은 곳은 북촌이야. 고래등같은 집 몇 채 외에는 그냥 바위산인 곳에 개발의 폭풍이 불어닥쳐. 당연히 일본인 건설업자도 덤벼들었고.... 여기서 조선인 건설업자가 나타나. 경남 고성에서 면장을 하던 정세권이야. 고성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면장으로 살다가 서울로 올라왔어. 서울로 올라올 때 2만원을 가져왔다고 해. 2만원이면 한옥집 두채 살 수 있는 돈.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뒤에 왕이 되었어. 당시 경성엔 세명의 왕이 있었어. 화신백화점을 만든 유통왕 박흥식. 평안도 삼성금광으로 부자가 된 광산왕 최창학. - 해방 후 김구선생에게 경교장을 제공했어. 그리고 건양사라는 건설회사를 만든 건축왕 정세권. 지금 혜화동, 보문동을 가면 작은 한옥집을 볼 수 있어. 이게 정세권선생의 작품이야. 그리고 요즘 핫플레이스 익선동에 있는 작은 한옥들. 그것도 정세권선생의 작품이야. 몇 일전에 익선동 길 건너편 종묘 담벼락 붙어있는 동네. 봉익동이라 한다네... 하여간 그 동네에서 찍은 사진이야. 왠지 북촌이랑 비슷하지?? 좁은 골목에 한옥건물. 정세권선생이 지은 건물이야. 또 하나 봉익동 어느 집 대문 계단을 찍은건데....나중에 북촌을 가서 대문을 잘 봐바. 대부분 이런 형식이야. 이렇게 정세권선생은 익선동에서 북촌의 모양을 구상했는지 몰라. 하여간 여기서 부와 기술을 쌓은 정세권선생은 북촌개발에 뛰어들기 시작해. 먼저 땅을 사고 집을 짓기 시작했어. 일본인들의 견제도 심했고 총독부의 견제도 있었어. 북촌전망대에서 보이는 것 처럼 이렇게 작은 한옥집을 지었어. 한옥집을 지은건 여러 이유가 있었어. 일단 당시 일본집보다 한옥집이 건설비가 쌌어. 한옥집은 조선인만 지을 수 있는데 조선인의 인건비가 쌌거든. 또 하나. 당시 경성은 제 2의 동경이 되고 있는 시기야. 1919년 3.1운동이 실패하면서 국내에서 독립운동은 사실상 사장된 시기야. 거기다 일본에서 신문물이 들어오면서 신여성같은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었어. 일본이랑 증오의 대상인 동시에 동경의 대상이 된 시기야. 이런 시기에 조선인을 보여주는게 한옥이라 생각했어. 집은 생활은 가능하지만 작게 만들었어. 마당은 나무 한그루 겨우 키울 수 있는 정도로 만들고 나머지 공간은 주거시설을 만들었어. 이렇게 조그맣게 집을 지은 이유도 있어. 고래등 집이 되면 살 수 있는 사람이 적어지자나. 100평짜리 한 집 만드는거보다 20평짜리 5집을 만들어야 거기에 조선인 5가족이 들어오고 조선인 동네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 이렇게 북촌은 정세권선생에 의해 경성 한 가운데 조선인 동네가 되었어. 그리고 이렇게 만든 집들을 분양을 하는데 기존엔 없었던 방식이 나타났어. 예나 지금이나 집을 살 때 한방에 돈을 넣는건 힘들자나. 그래서 당시에 월세, 전세비슷한 걸 만들었어. 처음에 목돈을 내고 나머지 금액은 차 후 조금씩 갚는 식으로. 혹은 목돈도 없으면 그냥 월세처럼 돈을 납부하는걸로. 당시 경성에 사는 조선인들에겐 천사같은 사람이지. 초가집에 살다가 아주 편한 기왓집에 살 수 있는데 목돈 부담도 줄어드니까. 경성에서 돈이 없어서 쫒겨나야하는 조선사람이 줄어든거지. 아까 경성 3명의 왕이 있다고 했지?? 화신백화점만든 유통왕 박흥식과 광산왕 최창학은 철저하게 친일을 해. 그런데 건축왕 정세권은 다른 길을 걸어. 우리가 봤던 물산장려운동 포스터야. 조선인이면 제발 조선인이 만든걸 씁시다. 이거지. 그의 회사인 건양사도 물산장려운동에 뛰어들어. 지금 탑골공원 뒤 낙원상가 앞 쪽이야. 여기에 물산장려운동 사무실을 지어서 기증을 해. 3층짜린가?? 적벽돌 건물이었어. 물산장려운동이 초창기에 잘 돌아갔던게 정세권선생같은 돈을 아는 사람이 있어서 그랬다고 해. 물론 물산장려운동의 최후는 아주 비참했어. 조선인은 공장도 없고 전부 수작업이라 생산이 수요를 못따라갔어. 결국 물건값은 폭등했고 그렇게 망했어. 그래도 민족기업이 민족자본을 활용했다는데 대단한 의미가 있어. 또 조선어학회라고 있었어. 일제는 조선말 즉 한글을 못쓰게 했어. 학자들은 한글이 없어지는걸 걱정해서 조선어사전을 만들기 시작했어. 정세권선생은 지금 삼청동 윤보선 가옥 건너편에 조선어학회 건물을 지어줘. 또 학자들이 사전편찬에만 집념할 수 있도록 제정적으로 지원을 해. 지금 윤보선가옥 건너편에서 조금 올라가면 조선어학회 표시가 있어. 지금은 저 표시 이 외에는 아무 흔적도 없어. 이게 조선어학회 회원 사진이야. 아랫줄 왼쪽에서 두번째 두루마기 입은 할배가 정세권선생이야. 건설업자가 조선어학회 단체사진에 그것도 앞줄에 찍혀있는걸 보면 그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어. 조선어학회는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33명이 구속되면서 사실상 해체가 되. 정세권선생은 구속되진 않았어. 그래도 일제에겐 가시같은 존재였어. 선생은 총독부를 찾아가. 자신이 가진 재산...지금 자양동, 즉 건대쪽과 뚝섬 일대 땅과 건축권리 등등을 총독부에 넘겨. 이 후 고향으로 내려갔고 그의 존재는 잊혀졌어. 그리고 구속되었던 사람 중 12명이 석방이 되. 어마어마했던 그의 재산과 자신의 동지를 바꾼거지. 지금도 그의 존재는 잊혀져있어. 그런데 아직 그를 기억하는 곳이 있어. 바로 토지대장이야. 북촌을 가면 우리가 밟는 많은 길들. 우리는 당연히 공도라 생각하는데 사실 정세권선생 소유의 땅이 많아. 그의 후손들도 그 길에 대해 어떠한 보상이나 재산권 행사를 하지 않았어. 아마 오늘도 수 많은 사람이 북촌을 거닐고 있을꺼야. 그리고 안내판에 적혀있는 조선 600년 고관대작이 살았다는 잘못된 정보를 보고 있어. 조선 고관대작은 북촌이 아니라 지금의 인사동쪽에 살았어. 운현궁이랑 천도교교당 근처에. 그리고 경성을 흔들었던 민족자본가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기억도 못할꺼야. 혹시라도 이 글을 본 사람이 있다면 기농 정세권선생을 기억했으면 좋겠어. 그에 대한 기록은 생각보다 적어. 그런데 그의 족적과 개발이 거대했기에 많은 흔적이 남아있어. 북촌을 갔을 때 한옥만 보는게 아니라 그걸 개발했던 민족자본가의 이야기가 함께 한다면 그 한옥은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그리고 같이 간 사람에게 잘난척도 할 수 있고ㅋ ps. 북촌전망대에 있던 사진이랑은 다른건데.... 저기 삐쭉 솟은게 광화문이야. 거기서 담따라 오른쪽으로 가면 있는게 동십자각이고. 그 옆이 지금 이야기하는 삼청동이랑 북촌쪽. 사진으로 잘 안보이지만...저 동네는 그냥 산만 있는 동네였어. 그러면 좀 있으면 겨울올껀데 그 전에 여기저기 많이 다니라구~~
댓글 9
ㅇㅇ(129.146)03-02
좋은 정보 감사 자주 글올려주길
ㅊㄴ03-02
진짜 감사합니다
asd03-02
비추 무엇 개추
ak03-02
정세권선생에 관한 유익한 글 감사드립니다. 제 여러분이 알 수 있도록 블로그에도 소개하겠습니다.
ㅁㅁ(192.111)03-02
오늘 북촌쪽 갔다 왔는데 너무 좋았다. 북촌 창덕궁 인사동루트 생각없이 탔는데 대만족
ggds03-02
난 저 동네 살았는데 글쎄? 그냥 돈쳐바른 동네임 90년~2000년대랑 너무 달러짐
ㅇㅋ(146.39)03-02
국뽕 미화 유교탈레반 비추
ㄷㅂ(225.109)03-02
와 정말 몰랐던 사실 알고갑니다 틀딱아니면 모를 얘기들이네요
ㅗㅜㅑ03-02
오~ 나 이런거 넘 좋아. 추추추추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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