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삿포로 스트렝스 위스키바 방문기
위스키 갤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삿포로의 그 바. 보통 위스키 바들과 달리 사람 많은 도시 중심가 1층에 자리잡고 있다.
한 가지 주의할 건 바에서 위스키 생산지 얘기를 꺼내면 자매점인 몰트바로 쫓겨난다더라.
카운터에 앉자 사장이 이곳 주문 방식을 설명했다. 난 이미 알긴 했는데 뭐 어쩌겠어. 그래서 "모든 음료 한 번씩 마셔보고 싶다"고 했더니 고급 상품 두 개만 꺼낸다. 뭔 이러는 거야. 가격을 물으니 하나가 1만엔이라고 한다. 알겠어, 돌린다.
대신 공식 싱글캐스크 28년 걸로 정했다. 1997/2025, 도수 57.5%.
향부터 따져보자. 건자두, 살구, 레몬청, 사탕수수 시럽이 먼저 올라온다. 입에 머금으면 포도의 피부 같은 쓴맛과 바닐라, 또 살구, 레몬그라스 같은 신큼이, 그리고 꽃향과 어떤 나뭇잎의 쌀쌀함이 겹친다. 마지막은 희뿌연 꽃다발 향에 살구, 자두 씨앗, 말려 바싹한 생강 칩, 바닐라가 꼬리를 물고 간다.
2주 걸쳐 마셨는데 담배 연기가 뭔가 방해를 많이 했다. 그래도 아란의 특징인 견과류 과일의 깊이는 확실히 느껴졌다.
재미있는 점은 퍼필 셰리인데 캐스크가 약하다는 것. 그 덕분에 아란 본연의 맛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시간이 흐르면서 쓴맛은 빠지고 여러 맛이 살아난다. 5천엔짜리 샘플로 이렇게 재활할 줄이야.
평가 중간에 갑자기 5ml를 따라준다 ㄷㄷ
이건 1995/2025, 도수 51.0%인 어나더 버전. 향을 제대로 못 맡아서 정확히는 어렵지만, 진하면서도 마른 올드 셰리 스타일로 보였다. 한약 냄새도 약간 나지만 중의약 같지는 않다. 차라리 컨디션이 좋을 때 다시 마셔봤으면.
그 다음부턴 3잔에 8천엔짜리 추천 음료를 부탁했다. 사장이 하프를 많이 따라준다면서 4잔을 9천엔에 준다고 한다. 오케이, 시작하자.
캐퍼도닉 22년, 1991/2014, 도수 53.6%부터. 맨 처음엔 파란 사과, 거품낸 바닐라, 타임향이 크다. 조금 이상한 쌀 냄새도 난다. 맛은 그 파란 사과와 바닐라에 박하 같은 민트, 홍차, 귤 껍질이 섞인다. 싹 틀린 방향으로 안 가고 정석을 따르는 느낌이 좋다. 끝은 파란 사과, 바닐라, 입을 팍 자극하는 꽃향, 아직 마르지 않은 건초 순이다.
버번 캐스크는데 꽤 점잖다. 도수도 절제된 느낌인데, 과일 폭탄 버번을 좋아하는 입장에선 좀 심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부터 내 상태가 나아지기 시작한다. 아란을 너무 빨리 마셔버린 게 아쉽네.
글렌키스 싱글 캐스크 19년, 1995/2014, 도수 56.3%. 처음엔 말린 포도, 훈제한 땅콩 껍질, 보라 자두, 정향 같은 향신료, 밝으면서도 민트 향이 난다. 맛보니 포도 주스의 진하함, 말린 건자두, 호지차의 쌀쌀함, 밀크 초콜릿의 부드러움, 제법 정확한 꽃향, 그리고 젖은 합판 같은 오크 향의 깊이가 느껴진다. 전체 밸런스가 정말 미친 수준이다. 끝은 바닐라, 건포도, 밝은 색 사과로 간다.
이건 공식 싱글 캐스크답게 믿고 마시는 맛이었다. 버번 글렌키스에서 흔한 열대 과일은 별로 없었다.
스프링뱅크 듀티 페이드 샘플 12년, 2013/2025, 도수 57.6%. 향에서 홍삼, 건포도, 아몬드, 불로 그을린 감자, 라임 그리고 밝은 박하가 느껴진다. 스프링뱅크인데 그 특유의 황 냄새가 생각보다 조절 잘 되어 있었다. 맛은 달콤한 포도의 말린 것, 또 말린 자두, 보라 꽃의 향미, 진한 초콜릿, 헤이즐넛, 자몽과 홍차의 조합, 향신료들, 그리고 젠틀한 오크가 층을 이룬다. 모든 요소가 자기 자리에서 목소리를 낸다. 끝맛은 건포도, 자두, 홍차, 쌉쌀한 꽃향이 입을 떠나지 않는다.
정식 스프링뱅크 15년은 배치마다 오줌 냄새가 악의적일 정도로 강했는데, 이건 확실히 다르다. 황 향이 정리돼 있으면서 팔레트가 깊다. 근데 그 깊이가 밸런스를 깨뜨리지 않는다는 게 신기하다.
RM 보모어 20년, 2005/2026, 도수 52.6%. 향을 맡으면 보라 꽃이 확실히 먼저 떠오르고, 뭔가 인공적인 꽃 향수도 느껴진다. 포도 맛 풍선껌? 이 정도는 처음이다. 보라 자두도 난다. 그리고 기묘한 프리머(케이싱) 냄새가 있다. 맛은 기름진 질감에 사과 젤리, 바닐라, 건초, 정향, 그리고 아주 약한 흙의 냄새 같은 피트가 있다. 마무리는 빨간 사과 껍질, 건초, 바닐라, 포도껌의 여운, 그리고 디퓨저 같은 은은한 꽃향이 있고, 먼지처럼 더티한 느낌도 약간 난다.
포도껌을 노트에 쓸 정도로 이렇게 직관적인 껌 향을 맡기는 오랜만이다. 이렇게 좋은 보모어도 처음이네. 버번 싱글 캐스크인데 버번의 전형에서 벗어난 프로필도 꽤 인상적이다.
이것까지가 오마카세 세트의 끝이었는데 사장이 또 서비스를 주신다 ㄷㄷ
앗케시 7년, 2018/2026, Bar Fishborn 15주년 컬렉션, 도수 57.0%. 향은 캔디처럼 달콤한 소다, 바닐라, 구아바, 그리고 꽤 진한 흙 냄새의 피트가 난다. 사과 같은 다른 향들은 소다에 파묻혀서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어떤 의미로는 피티드 아이리시 위스키 같은 신비로움이 있다. 맛을 보면 소다, 청사과, 구아바, 바닐라, 합판 같은 오크가 난다. 향을 그냥 따라가는 느낌이다. 마무리도 청사과, 민트감, 바닐라로 동일하게 이어진다.
앗케시가 이 정도라니? 복합미에서는 조금 떨어지는 감이 있지만, 여타 앗케시와는 확실히 다른 독특함이 있었다.
그런데 정리를 하다가 깨달았는데, 이 병의 반값도 안 되는 가격에 ^ 닛카 커피몰트^라는 거의 흡사한 논피트 대체품이 있다더라 ㅅㅂㅋㅋㅋ
지난번 가족 여행 때는 스트렝스를 못 들어갔는데 이번엔 드디어 왔다.
장점과 단점이 뚜렷한 바지만 장점이 우월하다. 뭘 마시고 싶은지 미리 정하지 않은 채로 온다면, 삿포로에 가면 스트렝스는 반드시 한 번은 가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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